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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9.29 text 1.

       
술 깬 오후의 외출은 영 어색하다. 그 어색함에 자꾸 돌아본다. 바지는 제대로 입은건지, 지퍼는 올렸는지, 어디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버스엔 이상하게 사람이 많고 봉의 녹색이 새삼스럽다. 아무래도 바지가 신경쓰인다. 바지를 입고 있음이 계속 느껴진다. 왕십리까지 한 시간 십여분 걸리리라 예상하고 나왔는데 사십오분만에 도착했다. 나의 서울대중교통경력 20년 사상 최악의 오차! 버스가 바로 왔고, 지하철이 바로 왔고, 지하철이 바로 왔을 뿐인데. 일상 속 기다림의 시간들 또한 새삼스럽다. 얼마전에 '기다림'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작가 이름은 무려 '하진', 중국사람이다. 내용은 줄창 기다리는 내용. (네이버에 의하면, 중국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하는《기다림》은 한 연인의 이야기이다. 시골 출신 군의관인 린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중국의 전통적인 여인 수위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다. 고향에 아내와 부모를 두고 무지라는 시의 군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린은 매달 돈을 고향으로 보내는 것으로 아들과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만 전족까지 한 전근대적인 아내을 사랑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던 중 같은 군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만나를 만나게 되고, 아내와는 달리 세련된 현대 여성인 그녀와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만나는 장교가 아닌 터라 군내 연애가 엄격하게 금지된 상황이고 린 자신은 이미 딸까지 하나 둔 유부남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의 주변을 맴도는 것으로 사랑의 마음만 확인한다. 린이 만나와 ‘합법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내 수위의 동의 하에 이혼을 해야 하지만, 부모님을 정성껏 돌본 아내에게 그런 요구하는 것도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은 매해 수위의 동의를 얻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고, 수위는 늘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다.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다. 별거한 지 17년이 되면 아내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있다는 법에 따르는 수밖에 없는 것. 린과 만나는 그렇게 십 수 년을 기다리고, 마침내 기다림이 끝나자 생각지도 못한 현실과 마주한다.) 생각지도 못한 현실 끝에 또 다른 기다림으로 이야기는 맺어진다. 징그러운 기다림의 이야기. 좋았던 점은, 한 사람의 기다림은 다른 사람에게 다른 기다림으로 다가오더라는 걸 마지막에 느낄 수 있었던 것. 왕십리역 6번 출구는 기이했다. 평범한, 네모난 삽으로 퍼낸 것 같은 오프닝의 계단을 지나 갑자기 부채꼴의 오프닝과 부채꼴의 계단이 가파르게 올라간다. 오 대학 근처라고 저 위엔 무언가 있나보다ㅡ 하고 나가니 고시촌과 부동산 술집이 어울어진 주택가(?) 자전거 주차장 앞이다. 녹두 거리와 흡사. 종로3가 3호선 쪽 나가는 곳으로 잘못 나간 이후 두번째 느끼는 당혹스러움. 하긴, 녹두에 지하철역이 생기면 집에 가기 좋을텐데. 계단에 걸터앉아 친구를, 아니 핸드폰을 기다린다. 어제는 술을 다양히도 마셨다. 맥주 소주 산사춘 백세주 막걸리 보드카. "하림이는 힘이 있어!" 라고 위로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씀에 기분이 좋아졌던 것일까. 다양하게도 많이도 마셨다. 내 술 버릇은 평범하고 또 다양하다. 취하면 필름 끊기고, 다음날 들어보면 토했다던가 울었다던가 잤다던가, 혹은 끊기기 전에는 담배를 피운다던가, 남들만큼 막말하고 남들만큼 말이 많아지고. 기억하는 것 중 최악은 작년 2학기 어느 날이었다. 무척이나 하기 싫은 과제-역시 무언가 만들어 가는- 를 하다가 누군가 제안을 했다. 어서 끝내고 나가서 술 먹고 수업들어가자고. 수업은 1교시였고, 1교시였기 때문에 더 그럴싸했다. 몇 명은 세시 쯤 끝내고 나갔고 나는 손이 느려 네시엔가 간신히 끝냈다. 신나게 마시고 8시에 녹두를 출발했다. 택시 안에서 친구가 토했다. 수습하고 (아직 제정신) 스튜디오에 들려 과제물을 챙겨서 강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스튜디오에 방치된 스티로폼 위. 시간은 오후 다섯시. 핸드폰도 없고 겉옷도 없다. 핸드폰은 청소하시는 아저씨께 그 다음날 받았고 옷은 결국 잃어버렸다. 집이나 다름없는 39동 안에서, 내 옷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 과목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C를 받았다) 친구 왔다. (아니 핸드폰이 왔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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